SpringNote
옛것을
좋아하여
장엄함으로
삼는다
좋아하여
장엄함으로
삼는다
돈황본육조단경,중론송,법구경,반야심경,
금강경,노자.장자,오쇼 禪강론.서양의 붓다 바울
도마복음,까비르,초간노자,참선요지
조주,사기열전,서산시문,경허 ......

| 제목 | 1.참선요지 |
|---|---|
| 원본 URL | http://easy.springnote.com/pages/2426510 |
| 최종 수정 | 2009-01-05T13:32:01Z |
| 최종 수정자 | http://zen24.myid.net/ |
허운 화상(虛雲 和尙) 약전(略傳)
허운 스님은 1840년 중국 복건성(福建省) 천주(泉州)에서 출생하였다.
속성(俗姓)은 소(蕭)씨이며, 19세 때 출가하여 그 다음해에 묘련(妙蓮) 화상에게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2, 30 대에는 각지의 대덕 스님들을 찾아다니며 경론(經論)을 배우다가, 43세에 발심하여 오대산(五臺山)을 향해 3보1배(三步一拜)로 나아가서 45세 때 오대산에 도착하였다.
이후로 각지의 명산(名山)과 고묘(古廟) 등지를 참배하고 49세 때는 티벳 라사까지 순력하였다. 그리고 계속 남하하여 50세 때는 인도, 실론, 미얀마의 불적(佛跡)을 참배하고 다시 북상하여 계족산(鷄足山)을 거쳐 귀국길에 올랐다. 53세 때는 구화산(九華山)에 도착하여 3년을 머물고, 56세 때 강소성(江蘇省)의 고호사(高昊寺)에서 정진하던 중 어느 날 끓는 물에 손이 데어 찻잔을 떨어뜨렸는데 잔 깨지는 소리에 깨쳤다.
61세에 다시 오대산과 오악(五岳, 태산, 화산, 형산, 항산, 숭산)을 참방하고, 63세에 곤명(昆明)의 복흥사(福興寺)에서 폐관(閉關, 독방에 문을 닫고 들어 앉음)했다가 65세에 출관(出關)하였다. 이후 각지를 다니며 경전 강의, 전계(傳戒) 등 중생교화와 가람(伽藍)의 중건불사(重建佛事)에 힘쓰기를 수십 년이었다.
97세부터 103세 사이에는 육조(六祖) 스님의 도량인 남화사(南華寺)에 머물고, 이듬해부터 수년간에 걸쳐 운문종(雲門宗)의 개창 도량인 운문사(雲門寺)를 복원하였다. 115세 되던 1954년에 강서성(江西省)영수현(永修縣)의 운거산(雲居山)으로 옮겨가서 진여사(眞如寺)를 중흥하고 여기서 주석하다가 1959년 10월 13일 세수 120세로 입적하였다.
스님은 젊은 시절 온갖 고행을 마다하지 않고 오직 불법을 구했으며, 갖은 병고와 액난에도 굴하지 않고 계율을 엄수하고 근고정진(勤苦精進)한 끝에, 종문(宗門)의 심인(心印)을 깊이 깨달아 단절되다시피한 5종 가풍을 다시 일으켰다. 외세의 침략과 공산 정권의 억압 하에서 승도(僧徒)를 수호하고 사찰, 불당의 파괴를 막았으며 대소 수십 개소의 가람을 복원하는 한편, 수많은 불자들에게 계(戒)를 주고 불문에 귀의시켰다. 그의 문하에서 출가하거나 수계한 재가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