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N

나는

무엇인가 ?

  • 도는 바로 그대 눈 속에 있거늘 /달마 스님 오신 뜻 따로 찾는가 /목 마르면 물 마시고 배 고프면 밥 먹고 /언제나 떳떳한 걸 딴 데서 찾지 말라.
    - 불안원

서산대사 - 선경어, 선교결, 기타잡문

조회 수 702 추천 수 0 2009.04.07 13: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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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경어 - 선교결, 기타 잡문

 

1.선교결 - 유정대사에게 보임

 

선교결(禪敎訣)은 서산대사가 말년에 유정대사에게 남긴 짧은 내용의 논서입니다. 서산대사는 이 선교결을 통해서 선(禪)과 교(敎)의 관계를 설명하고, 선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서산대사는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이다(禪是佛心 敎是佛言)'라고 하면서 선교일치(禪敎一致)의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구구한 교리를 이해하는 것 보다

선(禪)을 통해서 마음을 닦는 것이 더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잘못된 선사들의 관행에 대한 매서운 질타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서산대사는 하근기 중생들이 많은 시대에는 보고, 듣고, 믿고, 아는 것(見聞信解)만을 귀하게 여기고, 이치와 뜻과 마음과 말의 길이 끊어진 경절문(徑截門)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올바른 정맥을 택해서 수행할 것을 간곡히 당부하고 있습니다.

 

1

 

요즈음 선(禪)을 하는 사람은 말하기를, '이것이 우리 스승의 법이다'하고, 교(敎) 를 하는 사람은 '이것이 우리 스승의 법이다' 라고 말하면서 한 법(法)을 가지고 서로 옳고 그르다느니하여 손가락질을 하며 다투고 있으니 슬프도다!! 그 누가 능히 판단하겠는가?

그러나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이다(禪是佛心 敎是佛言). 교(敎)는 말이 있는 곳으로부터 말없는 곳에 이르는 것이요, 선(禪)은 말없는 곳으로부터 말 없는 곳에 이르는 것이다. 말없는 곳으로부터 말없는 곳에 이르면 그것을 누구도 무엇이라고 이름할수 없어 억지로 이름하여 마음이라고 한다. 세상 사람은 그 까닭을 알지 못하고 배 워서 알고 생각하여 얻는다고하니, 이는 실로 가엾은 일이다.

 

교(敎)를 하는 사람으로서 '교(敎)가운데도 또한 선(禪)이 있다' 고 말하는 자가 있으니, 이는 성문승(聲聞乘)도 아니며 연각승(緣覺乘)도 아니고, 보살승(菩薩乘)도 아니며 불승(佛乘)도 아니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는 선가(禪家)의 문에 들어가는 첫 구절이지, 선(禪)의 근본 뜻은 아닌 것이다. 세존께서 한 평생 말씀하신 가르침(敎)은 비유컨데, 세 가지 자비의 그물을 가지고 과거,현재,미래의 생사의 바다에 펴서 작은 그물로는 새우와 조개를 건지고 (이는 인천의 소승교와 같다(人天 小乘敎)), 중간 그물로는 방어와 송어를 건지고(연각(緣覺)의 중승교(中乘敎)와 같다)), 큰 그물로는 고래와 큰 자라를 건져서(이는 대승원돈교(大乘圓頓敎)를 말한다) 그 모두를 열반의 언덕에 두는것과 같으니, 이는 교의 순서인 것이다.

 

그 가운데 한 물건(一物)이 있으니, 갈기는 시뻘건 불과 같고 발톱은 무쇠 창날과 같으며,눈은 햇빛을 쏘고 입으로는 바람과 우뢰를 토한다. 몸을 뒤쳐 한번 구르면 흰 물결이 하늘에 닿고 산과 강이 진동하며 해와 달이 어두워진다. 세 가지 그물을 뛰어넘어 바로 구름 위로 올라가서 감로수를 쏟아 뭇 생명들에게 이로움을 주니 조사(祖師)문의 교외별전(敎外別傳)의 기틀을 말한다. 이는 선(禪)이 교(敎)와 다른 점이다. 이선의 법(禪法)은 우리 부처님 세존도 또한 진귀조사(眞歸祖師)에게서 따로 전해 받은 것이며 옛 부처의 케케묵은 말이 아니다.

 

요즈음 선의 뜻을 그릇 이어받은 자는 더러는 돈점(頓漸)의 문(門)으로써 바른 줄기라하는가 하면, 더러는 원돈(圓頓)의 교(敎)로써 종승(宗乘)을 삼고, 더러는 외도의 글을 인용하여 비밀한 뜻을 설하거나, 혹은 업식(業識)을 희롱함으로써 본분을 삼고, 또 더러는 빛의 그림자(光影)를 실재한 것으로 알아 자기라고 생각하며, 심지어 눈멀고 귀먹은 '방할(棒喝)'을 함부로 행하여 부끄러움도 없으니 이는 참으로 무슨 까닭인가 ?

 

법을 비방하는 그 허물을 내가 구태여 말하겠는가마는 내가 말하는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는 것이 배워서 알며 생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로지 마음 길이 다하여 끊어진 뒤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며, 스스로 긍정하여 고개를 끄덕인 다음에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대는 듣지 못하였는가? 세존이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니, 가섭이 얼굴 가득히 미소를 지은 뒤로부터 나아가 후세에 전한 바가 있으니, 이른바 달마(達磨)의 '확연히 툭 트이어 성인이랄 것도 없다(廓然無聖)'한 것과 육조(六祖)대사의 '선도악도 생각하지 말라(善惡不思)'한 것과, 회양(懷讓)의 '수레가 멈추거든 소를 채찍질한다(車滯鞭牛)'고 한 것과 행사(行思의 '여능의 쌀값(廬陵米價)'과 마조(馬祖) '서강의 물을 모두 다 마심(吸盡西江)'과 석두(石頭)의 '불법을 모른다(不會佛法)'함과 운문(雲門)에 이르러서는 '호떡(胡餠)'이요, 조주(趙州)의 '차 마심(喫茶)', 투자(投子)의 '기름 탐(沽油)', 현사(玄沙)의 '흰종이(白紙)', 설봉(雪峰)의 '공굴림(車昆毬)', 화산(禾山)의 '북 두드림(打鼓)', 신산(神山)의 '바라 두드림(敲羅)' ,도오(道吾)의 '춤을 춤 (作舞)'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모두 옛 부처와 옛 조사들이 같이 부른 교외별전(敎外別傳)의 가락이니, 생각으로 헤아릴수 있겠는가, 말로써 얻을수 있겠는가?

 

이는 모기가 무쇠 소를 물어뜯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이제 말세에 이르러 낮은 근기(劣機)는 많으나, 이들이 교외별전의 기틀은 아니다.

 

그러므로 다만 원돈문(圓頓門)의 이치의 길(理路)과 뜻의 길(義路)과 마음의 길(心路)과 말의 길(語路)로써 보고 듣고,믿고, 아는 것(見聞信解)을 귀하게 여길 뿐으로 경절문(徑截門)의 이치의 길이 끊어지고 의(義)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의 길이 끊어지고 말의 길이 끊어져 재미도 없고 모색할 것도 없는 경지에서 칠통(漆桶)을 깨뜨리는 것은 귀중하게 여기지 않으니, 그러한즉,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가.

 

이제 그대가 팔방의 납자(衲子)들에 대하여 그 요긴한 곳에 칼을 내리쳐 구멍을 뚫지 못하거든 바로 본분인 경절문의 활구(活句)로써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깨쳐 스스로 얻게 하여야만 할 것이니, 그것이 바로 종사(宗師)로서 사람들의 모범이 될 것이다. 만일 학인이 깨닫지 못함을 보고서 아무렇게나 설하고 가르치면 사람들의 눈을 멀게함이 적지 않을 것이다.

 

만일에 종사(宗師)가 이 법을 어기면,비록 설법하여 하늘에 서 꽃비가 어지러이 내릴지라도 이는 미치광이가 미쳐서 밖으로 내닫는 것이 될 뿐이다. 만일에 학인일지라도 이 법을 믿으면 비록 금생에 철저한 깨침을 얻지 못하여도 목숨을 마칠 때에 악한 업에 끌리지 않고 바로 깨달음의 바른 길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옛날 마조가 한 번 소리치자 백장이 귀 먹었고 황벽이 혀를 내둘렀으니, 이는 임제종(臨濟宗)의 연원이다. 그대는 반드시 정맥(正脈)을 가려서 종안(宗眼)이 분명할 것이므로 이렇게 누누히 말하는 것이니 뒷날 이 노승의 말을 저버리지 말라. 만일에 노승의 말을 저버리면 반드시 부처님과 조사의 깊은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 될 것이니 자세히 살피고 자세히 살펴야 한다.

 

2

 

천리를 달리는 기마(驥馬)가 어찌 채찍의 그림자를 기다리며 광야의 봄바람은 생각하면, 반드시 흐르는 물과 같을 것이다. 그런데, 옛 사람은 말하기를 '도(道)를 보기는 쉬우나 도를 지키기는 어렵다고 하였다. 그대는 항상 계율을 힘써 지켜 지해(知解)와 행(行)에 어긋나지 않아야 하고,남의 허물을 말하지 말며 조정의 일을 이야기하지 말며 외서를 보지 말며 삿된 형색을 보지 말며, 달콤한 말을 듣지 말아라. 이불과 베개가 있는 곳도 두려워해야 할 것이어늘 하물며 바깥 사람이 있는 곳이겠는가. 아첨하는 웃음을 가까이하지 말라. 속인도 꺼려 하거늘 하물며 도인 이야 그래서 되겠는가. 총명과 지혜로 나를 높이려하지 말고 문자를 가려 남을 없신 여기지 말라.

 

지극한 도에는 사람이 없고, 참된 이치에는 나(我)가 없느니라. 부디 항상 나의 분수를 지키고, 항상 나의 허물을 살피되 정직함과 검소함으로 체(體)를 삼고 사랑과 인내로 용(用)을 삼으며, 푸른 산과 흰 구름으로 집을 삼으며, 물과 달과 소나무와 바람으로 마음을 아는 벗을 삼아라. 그러면 거의 도인일 것이다.

 

2.혜안 선자

 

입은 코와 같고 눈은 눈썹과 같아야 비로소 고요히 앉은 소식을 알 것이다. 다시 묻노니, 어떻게 해야 도에 상응하겠는가 ? 비가 지나니, 산도 푸르고 물도 푸르다. 입을 열어 소리를 내려하다가 문득 때리고 말하기를, '어디로 가는가'. 양구(良久),

 

나루에서 꽃다운 풀 찾아도 보이지 않더니

밤이 오매 예와 같이 갈대꽃에 자더라

 

3.지해선자에 단두의 말로 답함

 

왼쪽으로 와도 잘못이요, 오른쪽으로 와도 잘못이며, 머리를 돌리고 뇌를 굴려도 모두 다 잘못이다. 필경 이는 무슨 면목인고. 돌, 십분 중 구분은 이미 선화자에게 말하였다. 일분을 남겨 선화자에게 주노니 선당으로 돌아가 자세히 살피라

 

4.태전선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데 무슨 허물이 있으며 옷 입고 밥 먹는데 무슨 허물이 있는가. 우습다, 옛날의 그 사람은 변하지 않았는데, 다만 옛날의 행리처가 변했구나. 양구, 부모가 낳아 준 입으로는 마침내 그대에게 말할 수 없구나.

 

5.성종선자

 

기륜이 작용하는 곳에 불조의 갈등을 흔들어 뒤집고, 보인을 찰 때 시비의 공안을 판단한다. 다시 말해 보라. 필경 어떠한가.

 

외로운 달은 홀로 빛고 강산은 고요한데

스스로 웃는 한 소리에 천지가 놀란다

 

6.덕인선자

 

위엄을 떨쳐 한 번 할을 하면, 몸과 목숨을 잃는다. 비록 이와 같아도 삼조의 지극한 도는 어렵고 쉬움이 없으며, 조주의 큰 도는 장안으로 통한다. 일시에 두 존숙을 잡아 엎드리게 하고서 감히 묻노니, 선화자는 시험해 말해 보라. 돌, 누두가 적지 않구나.

 

7.의정선자

 

방망이 끝에서 이치를 깨달으매 덕산을 저 버렸고, 할 밑에서 진리를 깨달으매 임제를 파묻었거늘, 하물며 횡설수설로 산승의 입을 더럽히고 선자의 귀를 막겠는가. 양구, 동을 바르고 서를 칠한들 어찌 천진한 얼굴과 같으리.

 

8.성희선자

 

생을 말하고 사를 말하지만 언제 마칠 기약인들 있겠는가. 다만 생사를 건너지 않으면 또 어떻게 살겠는가. 양구, 한번 숨을 내쉬면서 말한다. 한바탕의 패궐을 받아들이매 같지않음이 적고 적구나. 이,

항상 생각하노니, 강남의 삼월

두견새 우는 곳에 온갖 꽃이 향기로왔네

 

9.염불문

 

마음은 부처의 경계를 인연하나니, 항상 지녀서 잊지 않게 하고, 입은 부처의 이름을 부르나니 분명하여 어지럽지 않게 하라. 이렇게 마음과 입이 서로 응하여 생각하면서 부르는 한 소리는 능히 80억겁의 생사의 죄를 없애고, 80억겁의 뛰어난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니 한 소리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천 소리, 만의 소리이겠는가.

 

이른바 십성의 염불로 연지에 가서 난다 한 말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입에 있어서는 왼다 하고, 마음에 있으면 생각한다 하는데 한갓 외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이치에 아무런 이익이 없을 것이니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부처님은 상근인을 위하여 말씀하시되, 마음이 곧 부처요, 마음이 곧 정토이며, 자성이 곧 미타라고 하셨으니 이것은 이른바 서방이 여기서 멀지않다는 것이다. 또 하근인을 위하여 말씀하시기를 '십만 팔천리이다'하셨으니 이것은 이른바 서방이 여기서 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방이 멀고 가까운 것은 사람에게 있지 법에 있는 것이 아니며, 서방이 드러나고 감추어짐은 말에 있지 뜻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에 누구나 한 생각을 내지 않으면 과거와 미래가 곧 끊어져 자성의 미타가 홀로 드러나고 자심의 정토가 앞에 나타날 것인데, 이것은 곧 돈오돈수,돈단돈증이기 때문에 지위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허망한 행상을 뒤집기는 하루아침이나 하루 저녁에 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여러 겁을 훈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는 본래가 그대로이나, 부지런히 생각해야 하고 업은 본래가 공 한 것이나, 부지런히 끊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10.참선문 - 징장로에게 줌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사라지는 것을 생사라 하나니, 생사를 당하였을 때 부디 힘을 다하여 화두를 들어야 한다. 만일 화두에 간단이 있으면 이를 생사라 하고, 또 번뇌라 하며 그 화두가 어둡지 않으면 이는 당인이요, 자기의 집인 것이다. 이렇게 어둡지 않을 때 혹 다른 생각을 일으키면 그것은 반드시 어떤 그림자에 미혹된 것이다.

만일 관문을 뚫지 못하였거든 어린애가 어머니를 생각하듯 하고, 닭이 알을 품듯이 하고 굶주린 때 밥을 생각하듯이 하며, 목이 마를 때 물을 생각하듯이 하라. 이것이 어찌 조작한 마음이겠는가. 이렇게 자세히 참구하되 조금의 빈 틈과 간단이 없도록 생각하고 또 깊이 생각하면 반드시 자기 집에 이를 때가 있을 것이다. 힘쓰고 힘써야 한다.

 

또 네 가지 요소로 된 이 더러운 몸이 순간순간 마다 쇠퇴하는 것을 아는가. 또 네 가지 은혜의 깊고 두터움을 아는가. 또 사람의 목숨이 호흡 사이에 있음을 아는가. 일어나고 앉음이 편할 때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는가. 이것은 참선하는 사람들이 날로 생각해야 할 일이니 낱낱이 살피고 살펴보라.

 

11.자락가

 

청허자는 가정 을묘년의 여름, 처음으로 교종의 일을 맡고 그해 가을에 다시 선종의 일을 맡았다. 정사년 겨울에 인수를 풀고 풍악산으로 들어갔으며, 무오년 가을에는 지팡이를 날려 두류산으로 향하였다.

 

어떤 유생이 나를 희롱하여 말하기를, 처음에 판사가 되었을 때는 그 영화가 더할 데 없더니, 지금 판사를 잃고 나니 그 궁함이 또한 더할 데가 없구료. 몸이 괴롭고 마음이 답답하지나 않습니까 하였다. 나는 웃으면서 말하기를 내가 판사가 되기 전에는 한 벌의 옷과 한 끼의 밥으로 금강산에 높이 누웠었고 지금 판사를 그만 둔 뒤에도 한 벌의 옷과 한 끼의 밥으로 두류산에 높이 누어 있다네. 한평생의 생애는 산림에 있지 진세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얻고 잃는 기쁨과 슬픔은 밖에 있고, 안에 있지 않으며, 나아가고 물러나는 영화와 치욕은 몸에 있지 않고, 성품에 있지도 않다. 옛 사람은 높은 집에 올라앉아 한 길이나 되는 좋은 음식을 가득히 앞에 놓고 먹으면서도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으니, 그것은 지금의 내가 판사가 되었던 것과 같고 더러운 거리에 누워 한 그릇의 밥과 한 사발의 국을 먹으면서도 슬퍼하지 않았으니, 그것은 지금의 내가 판사를 그만둔 뒤와 같다.

 

그러므로 나아가고 물러감에는 영화도 치욕도 없거늘, 그 얻고 잃음에 있어서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슬퍼하겠는가. 기쁨과 성냄과 슬픔과 즐거움이 마음에서 나왔다가 입에서 그치는 것은 마치 연기와 구름과 바람과 비가 허공에서 일어났다가 허공에서 사라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아, 달인의 소행은 어떤 일이 닥쳐오더라도 그것을 따라 응해주며 그 일이 지나가면 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다. 스스로 그 마음을 쉬고 스스로 그 성질을

고를 뿐이다 하였다.

 

그 흥이 무궁하여 이에 한 곡의 노래를 지어 부른다.

 

머무니 여여하고

행하니 서서하다

우러러 웃고

굽어보며 탄식한다

나고 드는 데 문이 없거니

천지가 하나의 나그네이다

 

12.부모에게 제사하는 글

 

병자년 정월 열 사흗날 집을 나온 소자, 선교의 일을 함께 맡은 사자도대선사 아무는 묘향산 심원동 상남대의 초암에 병들어 누워 향과 폐백을 갖추고 사람을 보내 부모님의 쌍무덤 밑에 삼가 고하나이다.

 

엎드려 생각하오니, 구천은 멀며 구원은 아득하온데 아버지는 어디계시며 어머니는 어디에 계시나이까. 누구에게나 부모가 없을까마는 저희 부모의 은혜는 다른 사람과 아주 다르며, 누구에게 생사가 없을까마는 저희 부모의 죽음은 참으로 마음 아픈 일입니다.

 

지난 일을 생각하오면 사람들은 그 인자함을 칭송하면서도 그유한한 인자함은 알지 못하였고, 엄격함은 알면서도 도덕의 엄격함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 인자함은 후손들이 어루만지기에 넉넉하였고, 그 엄격함은 선열을 잇기에 넉넉하였습니다. 어찌하여 세 아들이 머리를 땋는 날과 소자가 이를 가는해에 인자한 어머니는 갑자기 난새를 차시고, 엄격한 아버지는 이어 기마를 타셨나이까. 바람은 옛 나무에 슬프고 달은 빈 문을 조상하였나 이다.

 

소자가 뜰에서 절한들 누가 시를 가르치고, 문에서 절한들 누가 짜던 베를 끊겠나이까. 아버지를 생각하오니 창자가 이미 끊어졌고, 어머니를 생각하오니 눈물이 피로 변하나이다. 천하와 인간세상의 그 어떤 슬픔이 이보다 더하겠나이까. 아아, 슬프고 애달파라.

 

소자는 외로운 그림자를 쓸쓸히 나부끼면서 이름을 관학에 두었다가 학문을 그만두고 산에 들어가 머리를 깎은 뒤에 선교의 일을 맡고 금궐에 두 번 조회 하였삽더니, 세월은 흘러 어느새 백발이 성성하였나이다. 이미 두 형이 죽고 한 누이마저 갔으니 하늘을 불렀으나 하늘은 높아 부르짖을 길이 없고, 땅을 두드렸으나 땅은 두터워 호소할 길이 없었나이다. 오늘에 이르러 은애를 끊는 것이 부처님의 법이라 하지만,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은 또 유교의 법입니다.화서를 탄식하면서 고향을 생각하면 구름이 슬프고 송추를 바라보면서 의관을 생각하면 또 바람소리가 슬픕니다. 아아, 슬프고 애달파라.

 

생각하오면 소자가 처음 났을 때 무릎 밑에 두고 손바닥 위에서 길렀으니 아버지의 은혜는 하늘과 같고, 쓴 것은 삼키고 단것은 뱉으니 어머니의 덕은 땅과 같나이다. 또 생각하오면 어머님이 돌아가시는 아침에 이 소자를 아가라고 세 번 부르고, 한소리로 통곡하셨으니, 아아, 슬프고 애달프오며 또 생각하오면 아버지 돌아가시는 밤에는 소자를 안은 채 베개를 높이하고 이

불 속에서 고요히 가셨으니 아아 슬프고 애달픕니다.

 

푸른 등불은 벽에 걸렸으나 어머니의 길쌈하는 모습 다시 볼 수 없고, 고향 산의 연기와 달에서는 아버지의 시 짓고 술 마시는 모습을 다시 볼 수 없사오니 말소리와 모습이 아득하여 천추의 영원한 이별이옵니다.

 

그러하오나 저승과 이승은 하나의 이치요, 아버지와 자식은 하나의 기운이라 천리 바깥에서 한 번 통곡하고 만 번 절하며 한번 드리옵니다. 백발의 한 형이 나를 대신하여 한 번 제사하나이다. 아득한 가운데서도 알음이 있삽거든 가엾이 여겨 밝게 살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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